허정찬 기자
제78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가 사상 처음으로 학생 부문인 *라 시네프(La Cinef)*에서 1등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 주인공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41기 출신 허가영(29) 감독이다. 수상작은 허 감독의 졸업 작품인 단편 영화 <첫 여름>이다.
라 시네프는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중·단편 작품을 대상으로 한 경쟁 부문으로, 매년 가장 뛰어난 3편을 선정해 1~3등 상을 수여한다. 올해는 전 세계 646개 학교에서 출품된 총 2,679편의 작품 중 단 16편만이 본선에 올라 경합을 벌였다.

<첫 여름>은 손녀의 결혼식보다 남자 친구 학수의 49재에 가고 싶은 노년 여성 '영순'의 이야기를 담은 30분짜리 단편영화다. 영순 역은 1970년대 영화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배우 허진(76)이 맡았다. 이 작품은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 사랑과 후회, 여성의 욕망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세계 영화인의 주목을 받았다.
허 감독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기억에서 출발해 영화를 구상했다”며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균열을 내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다작을 하고 싶다. 2년 안에 꼭 장편을 찍는 것이 목표”라는 포부를 전했다.
이번 수상은 KAFA 역사상 라 시네프 부문 1등상 수상으로는 첫 사례다. 그동안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은 2006년, 2008년, 2009년, 2023년 네 차례 수상 경력이 있으나 모두 2~3등상에 그쳤다. 이번 1등상 수상은 한국 영화 교육의 성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쾌거로 평가된다.

허가영 감독은 1등 상금으로 1만5000유로(한화 약 2,300만원)를 받게 되며, 수상작은 6월 6일 파리에서 한 번 더 상영될 예정이다.
한편, 올해 라 시네프 부문에서는 한국의 <첫 여름>이 1등, 중국 추즈정 감독의 <게양식 전 열두 개의 순간>이 2등, 일본의 미키 다나카 감독의 <진저 보이>와 에스토니아의 나탈리아 미르조얀 감독의 <3월의 겨울>이 공동 3등상을 받았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첫 여름은 노년기 여성이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 영화계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며 “젊은 영화인들에게 큰 희망이자 한국 영화의 미래를 밝히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올해 칸 국제영화제 장편 부문에는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초청되지 않았으며, 정유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안경>이 비평가주간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나 수상은 불발됐다.
이번 수상은 코로나 이후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던진 사건으로, 허가영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