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둔화 우려와 반도체 업황 피크아웃(정점 통과) 불안이 겹치며 국내 증시가 요동쳤다. 코스피 지수는 장중 6% 넘게 폭락하며 6000선 아래로 주저앉았고, 시장 변동성 확대로 약 두 달 만에 프로그램 매도호가 효력이 정지되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6%대 급락세를 보이며 장중 5,950.00까지 밀려났다. 코스피가 장중 6000선을 밑돈 것은 지난 7월 31일 이후 약 47거래일 만이다. 지수는 지난 2일 종가 기준 '7천피(7003.74)'를 기록한 이후 이날까지 5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으며, 이 기간 동안 누적 낙폭만 1000포인트를 넘어섰다. 7000선에서 단숨에 6000선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시가총액 역시 800조원 이상 증발해 5000조원 밑으로 주저앉았다.
장 초반 낙폭이 가팔라지자 오전 9시 47분 58초 코스피200 선물 가격이 5% 이상 급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서 5분간 프로그램 매도호가의 효력이 정지되는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피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지난 8월 19일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이번 폭락의 진원지는 대형 반도체주였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D램 메모리 기술 진전을 바탕으로 연내 차세대 서버용 제품 양산 계획을 밝히면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경쟁 격화 우려를 자극했다. 간밤 미국 뉴욕증시에서 마이크론(-3.88%), 램리서치(-2.9%), 엔비디아(-1.3%) 등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구성 종목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인 여파가 국내 시장으로 고스란히 전이됐다.
여기에 혹 탄 브로드컴 CEO가 "AI 붐의 최대 제약 요인은 반도체나 전력이 아닌 자본(자금 조달)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글로벌 고금리 기조에 따른 AI 인프라 투자 축소 우려가 재점화됐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가 3분기 분기 사상 최대 실적(영업익 107조4000억원)을 발표했음에도 호재 속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는 '셀온(Sell-on)' 현상과 원화 강세에 따른 부담까지 겹쳤다.
이에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전자는 장중 7~8%대 급락해 23만원 선까지 위협받았고, SK하이닉스 역시 8%대 급락하며 148만원 선으로 밀려났다. 현대차(-5.78%), 삼성전기(-6.79%), SK스퀘어(-9.35%) 등 시총 상위권 대형주 전반에 파란불이 켜졌다.
수급 측면에서는 외국인의 거센 매도세가 지수를 짓눌렀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홀로 2조원 안팎의 매도 물량을 쏟아내며 하락을 주도했다. 개인과 기관이 각각 1조원, 7000억원대 순매수로 방어에 나섰지만 지수 방어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간 지수 하단을 지지해주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사실상 막바지에 이르면서 수급 안전판마저 약화된 점도 충격을 키웠다.
같은 시각 코스닥 지수 역시 에코프로비엠, 레인보우로보틱스, 알테오젠 등 주요 성장주가 일제히 하락하며 4~5%대 급락세를 나타냈다. 증권가에서는 "가파른 원화 강세와 글로벌 AI 투자 불확실성, 반도체 수급 공백이 맞물리며 단기 변동성이 극대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