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받고 후원자에게 비용을 대납하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시장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기사회생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구회근)는 23일 오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시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벌금 1000만 원과 추징금 2100만 원을 선고했던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오 시장과 함께 기소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여론조사 비용을 건넨 혐의를 받는 후원자 김한정 씨에게도 모두 무죄가 내려졌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유죄를 뒷받침한 핵심 증거인 명태균 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재판부는 “범죄사실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증명력이 있어야 하며, 검사의 입증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설령 유죄의 의심이 들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형사법 원칙을 먼저 짚었다.
이어 “명 씨의 진술은 직접 경험한 사실과 단순 추측에 근거하거나 과장된 내용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객관적 사정이나 다른 관련자들의 진술과도 배치된다”며 “명 씨는 수사 초기엔 오 시장의 혐의를 말하지 않다가 고소 방침이 알려진 2023년 12월부터 본격 진술하며 ‘어떻게 엮는지 보라’는 식의 위협적 발언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한 오 시장이 명 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할 동기가 부족하며, 정치적 리스크가 큰 불법 비용 대납을 후원자에게 직접 요구했다는 공소사실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다.
오 시장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 씨에게 총 10차례에 걸쳐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그 대가로 3300만 원을 후원자 김한정 씨가 대납하도록 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김건희 특검(특별검사 민중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1심은 10건 중 5건(2100만 원 상당)에 대해 대납 공모를 인정해 시장직 상실형인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정치자금법상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되고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하지만 2심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김한정 씨와 명태균 씨 간의 통화 녹취 파일 3개가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녹취에서 김 씨가 “거기서 원해서 한 것도 아니고 내 혼자 해 가지고”라고 하자 명 씨가 “오세훈이는 몰라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답한 내용이 재판부에서 탄핵증거로 채택되면서 명 씨 진술의 증명력이 탄핵됐다.
이날 법정에 출석하기 전 서울아레나 공사 현장을 점검하며 여유를 보였던 오 시장은 무죄가 선고되자 울먹이며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선고 직후 오 시장은 “오세훈의 결백을 믿어주시고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투표해 주신 서울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시민들의 믿음과 혜안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욱 열심히 일해 보답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특검법상 신속재판 규정(각 심급별 3개월 이내 선고)이 적용됨에 따라 상고심 일정은 이르면 내년 1~2월 중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될 경우 오 시장은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털어내고 당내 입지 강화와 함께 향후 대권 가도에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결정할 경우 향후 재보궐선거 국면과 맞물려 정치적 파장이 커질 가능성도 남아있다.
한편 이번 사건을 판결한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7일 명 씨로부터 무상 여론조사를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도 “여론조사는 정치자금법상 재산상 이익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