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기재돼 있지 않아 후속 절차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 기관장 자격으로 출석해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청와대와의 갈등 경위에 대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들의 자질과 능력 등을 신중히 검토하고 후속 절차를 위해 지속해서 협의해왔으나, 결국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대법관 임명 제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청와대로부터 대법관 후보자를 다시 제청해달라는 공문을 받았지만, 이미 제청된 후보자의 임명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제청하도록 요청하는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고 공문의 내용만으로는 그 취지를 알기도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4명을 추천했으나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조 대법원장은 지난 8월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후보자로 제청했다. 청와대는 절차적 완결성을 이유로 재제청을 요구했으나 조 대법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공석 사태가 이어져 왔다.
이날 조 대법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의결된 일반증인 출석 요구와 관련해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기관장 자격으로만 자리했다. 이에 따라 증인 선서 및 질의응답은 전면 거부했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에 관해 증언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삼권분립과 사법 독립 원칙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며 "국감이 궁금해하는 사항은 대법원장으로부터 위임받은 법원행정처장이 답변하도록 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 등 관계자들의 증인 선서가 진행되는 동안 조 대법원장은 자리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으며, 민주당 소속 서영교 법사위원장의 거듭된 선서 요구에도 "선서나 증언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서 위원장이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불허하자 국감장은 여야 간 거센 충돌로 번졌다.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은 "대법원장이 인사말 후 이석했다가 국감 마무리 때 다시 나오는 것은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기 위한 수십 년간의 관례였다"며 "다수의 힘으로 체포하고 감금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서 위원장과 여당 의원들은 출석한 일반증인으로서 국회의 질의에 답해야 한다고 맞서며 파행을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