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제주에서 실종 사건을 담당한 현직 경찰관이 실종자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채 사건을 ‘셀프 종결’해 온 정황이 드러났다. 석 달 넘게 행방이 묘연한 30대 여성 실종 사건에 이어, 동일한 방식으로 종결 처리됐던 또 다른 실종자는 재수색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제주경찰청은 제주서부경찰서 실종수사팀 소속 A 경장(30대)을 직무유기, 공전자기록 위작·행사,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전날 긴급체포했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지난 5월 제주에서 실종된 장미란씨를 찾는 전단지. 장미란씨 가족 SNS 갈무리)
“연락 닿았다” 거짓말로 수색 중단… 두 번째 실종자 51일 만에 숨진 채 발견
경찰에 따르면 A 경장의 부실 대응으로 피해를 본 사례가 잇따라 확인됐다.
지난달 2일 60대 남성 B씨 가족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A 경장은 당일 가족에게 “B씨와 연락이 닿았고 무사하다. 본인이 가족에게 위치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안내한 뒤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
그러나 B씨와 계속 연락이 닿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가족은 최근 장미란(37) 씨의 장기 실종 보도를 접한 뒤 지난 21일 경찰에 재차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재수색에 나선 경찰은 신고 다음 날인 22일 제주시 모처에서 실종 51일 만에 숨진 B씨를 발견했다.
앞서 3개월 넘게 행방불명 상태인 장미란 씨 사건에서도 같은 수법이 쓰였다. 장씨의 남자친구는 지난 5월 15일 오후 6시 43분경 실종 신고를 접수했으나, A 경장은 신고 접수 약 2시간 30분 만에 “장씨가 안전하며 위치를 알리기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사건을 임의 종결했다. 당시 초동 수색에 나섰던 관할 파출소 인력도 철수했다.
이후 가족들은 7월 19일 재신고를 접수하고 전단을 배포하며 애타게 장씨를 찾아 나섰지만, 사건 발생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행적은 묘연한 상태다.
통화 기록 전무·내부 시스템 삭제 정황… 뒤늦은 제도 개선 추진
수사 결과 A 경장의 사무실 유선전화나 업무용 휴대전화 등에서는 실종자들과 통화한 기록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A 경장이 경찰 내부망인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 실종자 관리목록을 임의로 삭제하거나, 장씨의 상태를 ‘변사’ 등으로 허위 입력해 종결 처리한 정황을 포착하고 디지털 포렌식 등을 통해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 중이다.
A 경장은 이번 사건과 별개로 지난달 22일 자신이 근무하던 경찰서 여자화장실에 침입한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이미 입건돼 직위해제된 상태였다.
논란이 확산하자 홍석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제주경찰청을 방문해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사안에서 중대한 미비점이 드러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실종 사건 해제 시 관리자가 최종 승인하는 '이중 확인' 절차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A 경장이 최근 1년간 처리한 실종 사건 전체를 전수조사하는 한편, 헬기와 드론, 해경 경비정 등 하루 평균 14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해 장씨의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제주시 한림항 일대를 중심으로 집중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