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육군사관학교 38기 동기회가 정부가 추진 중인 ‘3군 사관학교 통합(국군사관학교 창설)’에 공개 찬성한 동기생들의 제명을 추진했다가 논란이 일자 잠정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작 12·3 내란 사건으로 중형을 선고받아 육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38기) 등 핵심 인물들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동기회와 총동창회의 잣대가 편향되었다는 ‘이중잣대’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13일 군 소식통 및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육사 38기 동기회 회장단(회장 유제학 예비역 대령)은 지난달 29일 임원회의를 열고 최화식 전 육군기계화학교장(예비역 준장), 정항래 예비역 중장, 노수훈 예비역 대령 등 동기 3명에 대한 회원 자격상실(제명) 안건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동기회 측은 이들이 지난달 20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국군사관학교 창설 지지 기자회견’에 참석한 점을 문제 삼았다. 동기회 회칙 제5조(개인·단체·국가에 심대한 손해를 끼치거나 명예를 훼손했을 시 회원 자격 박탈)를 위반했다는 이유다. 동기회는 당사자 의견진술을 거쳐 오는 19~21일 총회를 열고 제명을 확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절차가 공지된 후 당사자들의 강한 반발과 함께 안팎에서 적절성 논란이 불거지자, 동기회는 지난 12일 관련 절차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한 소식통은 “국군사관학교 창설 지지 의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제명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어 불씨는 남아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동기회와 육사 총동창회가 12·3 내란을 모의·실행해 법원 단죄를 받은 인물들에게는 철저히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용현 전 장관은 지난 2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으나, 38기 동기회 차원의 제명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41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48기) 등 내란 가담자들에 대해서도 총동창회 차원의 조치는 없었다. 과거 계엄문건 작성 혐의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나 댓글 공작의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 등 명백히 육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인물들도 제명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오히려 총동창회는 각 기수 동기회를 거치지 않고도 사관학교 통합 지지 활동 등을 제한할 수 있도록 ‘직권 제명’이 가능하게 규정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판준 육사 총동창회장은 김 전 장관 등의 제명 여부에 대해 “각 기수에서 판단할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총동창회 관계자는 “내부 논의는 있었으나 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어떻게 처벌하냐는 의견도 있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제명 대상이 된 최화식 예비역 준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육사 출신들이 자행했던 군사쿠데타를 일부의 일탈로 축소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인정하고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며 “그것이 현역 후배들과 생도들을 과거 쿠데타의 망령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길”이라고 사관학교 통합 지지 배경을 밝혔다.
반면 박판준 총동창회장의 편향된 역사인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 회장은 안규백 국방부 장관 면담 후 “계엄 세력 때문에 통합을 진행한다면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과드리고 통합을 물러 달라고 하겠다”고 말해 진정성 논란을 불렀다. 또한 전두환 씨에 대해서도 “처벌을 다 받았다. 화장한 유골을 집에 모시는 극악한 처벌을 받았다”고 발언해 중립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관학교 통합이라는 정책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동기를 쫓아내려 하면서 정작 국가 헌정을 흔든 내란 범죄에 대해서는 엄호로 일관하는 육사 동문회의 행태에 대해 군 안팎의 비판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