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일면식도 없는 10대 여고생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윤기(23)가 범행 발생 두 달여 만에 살인의 목적이 '성범죄'였음을 법정에서 공식 인정했다. 그동안 '자살을 결심한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차량 블랙박스 등 결정적 증거가 드러나자 결국 입장을 번복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이정호)는 이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살인) 및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장윤기의 2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 장윤기 측 국선변호인은 첫 공판 당시 인정을 유보했던 '강간 목적 살인' 혐의에 대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밝혔다. 장윤기 역시 변호인의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네"라고 짧게 답했다.
장윤기가 해당 혐의를 인정한 것은 지난 5월 5일 경찰에 체포된 이후 처음이다. 검찰의 보완 수사와 1차 공판 과정 내내 그는 "자살을 결심했고, 누군가 데려가려 했다"며 계획적인 범행을 강하게 부인해 왔다.
하지만 장윤기는 최근 변호인과 함께 자신의 범행 당시 정황이 담긴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직접 확인한 뒤 태도를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10일 성범죄 목적을 인정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검찰은 장윤기의 계획범죄를 입증할 추가 증거를 다수 제출하겠다고 예고했다. 검찰은 장윤기의 차량에서 발견된 결박용 도구인 '케이블타이'의 현장 감식 영상과, 자취방에서 심하게 훼손된 형태로 발견된 '리얼돌' 관련 과학수사 보고서 등을 증거로 신청했다. 범행 장면이 담긴 영상 등 일부 증거물 조사는 범행의 잔혹성과 피해자 사생활 보호를 고려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장윤기의 연쇄적인 범행 행각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5일 오전 0시 10분경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대학교 인근 인적 드문 도로에서 고등학생 이채원(16) 양을 성폭행 목적으로 납치하려다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이 양의 비명을 듣고 도우려 달려온 고등학생 고모(16) 군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살인 범행 이틀 전인 5월 3일에는 식당에서 함께 아르바이트했던 베트남 국적 여성 A씨(26)의 주거지에 침입해 성폭행하고 약 13시간 동안 감금한 혐의도 드러났다. 과거 사회복무요원 시절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혐의 역시 공소사실에 포함됐다.
한편, 장윤기의 아버지가 현직 중간 간부급 경찰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은 사법 당국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검찰의 보완 수사 과정에서 담당 경찰 수사팀이 수사 기밀을 유출하고 증거를 인멸한 정황 등 제 식구 감싸기식 은폐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를 둘러싼 철저한 진상 규명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