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전국 고교야구대회에서 광주제일고를 향한 조롱성 응원 구호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배재고등학교가 남은 대회 경기 기권을 포함한 후속 대책을 검토하는 가운데, 총동창회까지 교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영상 갈무리)
교육계와 야구계에 따르면 배재고는 최근 불거진 응원 구호 논란의 심각성을 고려해 오는 2일 예정된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2회전 경기 기권을 포함한 다양한 수습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다만 학교 측은 대회 성적이 2·3학년 선수들의 대학 진학과 프로 입단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학부모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논란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대회에서 배재고 일부 학생 선수들이 상대 팀인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치면서 시작됐다. 일부 학생은 "탱크데이"라고 외친 것으로도 전해졌다.
해당 구호는 지난 5월 논란이 됐던 스타벅스코리아의 이른바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으며,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고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광주제일고 코치진은 경기 도중 즉각 심판진에 항의했고, 심판은 배재고 측에 주의를 줬다. 경기 종료 후 권오영 감독과 코치진은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을 찾아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재고는 논란 직후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학교는 사과문에서 "일부 학생 선수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로 광주제일고 선수단과 학부모, 동문, 광주 시민을 비롯한 많은 분께 깊은 상처와 실망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일탈이나 실수가 아닌 윤리의식과 역사 인식의 총체적 붕괴에서 비롯된 심각한 사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효준 배재고 교장은 광주제일고를 직접 방문해 사과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 광주제일고 측은 학생들의 의견을 먼저 확인한 뒤 방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태는 학교의 사과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광주제일고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공식 항의서한을 제출했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단체들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해당 사안을 정식 안건으로 심의할 예정이다. 위원회에서는 배재고에 대한 징계 여부와 수위는 물론, 오는 2일 예정된 배재고와 순천효천고의 2회전 경기 개최 여부도 함께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도 별도의 조사에 착수했다. 교육청은 담당 부서를 배재고에 보내 사건 발생 경위와 현장 제지 여부, 학생 선수 지도 과정, 학교의 후속 조치 및 재발 방지 교육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또 서울시교육청은 운동부를 운영하는 서울 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경기장 내 혐오·차별 표현 근절과 스포츠맨십, 인권 감수성, 역사 인식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논란이 커지면서 배재학당 총동창회도 강도 높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총동창회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응원 과정의 실수가 아니라 스포츠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라며 "학생들에 대한 평소 교육과 관리·감독 체계를 철저히 점검해야 하며 학교 지도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학교법인에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촉구하며 "책임 있는 지도부의 결단만이 상처받은 광주제일고와 국민께 책임을 다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총동창회는 광주제일고 선수단과 동문들에게도 "배재인 모두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여러분께서 느끼셨을 실망과 분노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한편 온라인에서는 배재고가 발표한 사과문이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은 교육계와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