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현지시간 지난 주말 미국 증시를 덮친 '반도체 쇼크'와 금리 인상 우려라는 대형 악재가 국내 증시를 강타했다.
8일 오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개장 직후 동반 폭락하며 시장 전체 거래가 일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가 잇따라 발동되는 등 이른바 '검은 월요일(블랙 먼데이)'을 맞이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12.50포인트(1.38%) 내린 8048.09에 장을 시작한 뒤, 개장 직후 낙폭을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오전 9시 3분 42초, 코스피 지수가 전장 대비 8%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자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에 '서킷브레이커'를 전격 발동했다.
국내 증시에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것은 올해 들어 3번째이며, 역대 9번째다. 이에 따라 코스피 시장의 모든 매매 거래가 20분간 전면 중단됐다. 오전 9시 5분 현재 코스피는 전장 대비 683.13포인트(8.37%) 폭락한 7477.46을 기록하며 75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어 오전 9시 34분 45초에는 코스피200 선물이 5%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서 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 효력정지(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돼 시장의 변동성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줬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국내 증시를 이끄는 반도체 대장주 삼성전자는 전장 대비 9% 넘게 급락하며 29만8500원선에서 거래돼 30만원 선이 힘없이 무너졌다. SK하이닉스 역시 8.02% 떨어진 190만4000원에 거래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외 주요 대형주들도 일제히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효과로 최근 급등했던 LG전자가 12.71% 빠진 26만4500원에 거래 중인 것을 비롯해 현대차(-9.86%), 삼성전기(-9.16%), KB금융(-5.07%), 네이버(-3.72%), LG에너지솔루션(-3.86%) 등이 줄줄이 약세를 기록 중이다.
투자자별로는 외국인이 3421억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지수를 강하게 끌어내리고 있는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2071억 원, 1421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물량을 받아내고 있다. 외국인은 이로써 20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코스닥 시장 역시 폭풍을 피해 가지 못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1002.44)보다 42.83포인트(4.27%) 급락한 959.61로 출발해 오전 9시 15분 기준 7.07% 내린 931.59를 기록하며 1000선 밖으로 밀려났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오전 9시 6분 2초를 기해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금융시장의 불안 고조는 외환시장으로도 번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거래 종가(1539.1원)보다 16.1원 급등한 1555.2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는 시초가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6일(1590.0원) 이후 17년 3개 여 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번 증시 폭락의 주된 원인은 지난 주말 뉴욕 증시에서 불거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우려와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다.
미국의 고용 지표가 여전한 회복력을 보이면서 연준이 연내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올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현행(3.5~3.75%)보다 0.25%포인트 올릴 확률은 61.93%까지 치솟았고, 이에 나스닥 지수는 4.18% 급락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AI 매출 가이던스가 시장 예상을 밑돌면서 '빅테크의 AI 투자 속도조절론'이 급부상했다. 이 영향으로 뉴욕 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는 10.26% 폭락하며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마이크론(-13.3%), 마벨테크놀로지(-16.8%), 인텔(-11.3%), AMD(-10.9%), 엔비디아(-6.2%) 등 반도체 주들이 무더기로 급락한 여파가 고스란히 국내 반도체 공급망 체인으로 전이된 형국이다.
정다운 LS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지난 금요일 코스피200 야간 선물이 하한가(-8%)를 기록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당사는 고점 대비 20% 이상의 낙폭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시장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