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과 이란의 전쟁 종식을 위해 양국 실무진이 마련한 양해각서(MOU) 초안의 최종 승인을 보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기존 잠정 합의 조건을 대폭 강화한 수정안을 이란 측에 다시 전달하며 협상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미국 매체 액시오스(Axios) 등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 당국자들은 종전 MOU에 잠정 합의한 뒤 각각 최종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이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초안 승인을 거부하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9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약 2시간 동안 고위 참모회의를 열고 종전 MOU 승인 여부를 논의했으나 별다른 결론을 발표하지 않았다.
당초 실무진이 조율한 MOU 초안에는 ▲미국과 이란의 휴전을 60일 연장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 개방하며 ▲연장된 휴전 기간 동안 이란 비핵화 협상을 진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미국이 핵 협상 진전에 맞춰 대이란 제재를 완화하고 동결자산을 해제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자금 동결 해제 조치가 포함된 합의안에 강한 우려를 표시하며 참모진에게 조건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체결한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지나친 양보"라고 비판하며 2018년 직접 탈퇴한 바 있다.
수정안에는 특히 핵무기 관련 조항이 대폭 구체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MOU에는 이란의 핵개발 금지 선언만 상징적으로 담겼으나, 수정안에는 '미국의 이란 농축 우라늄 확보 방안과 시기' 등이 추가됐다. 아울러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관련한 문구도 미국 측에 더 유리하게 수정됐다.
소식통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답변이 늦어지는 것에도 불만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이번 수정안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기존 제안을 신속히 수용하도록 압박하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압박과 낙관을 동시에 던지는 양면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그는 30일 폭스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란과 매우 좋은 합의(very good deal)에 거의 근접했다"며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 이란 사태를 다른 방식으로 끝내겠다"고 밝혀 군사작전 카드가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음을 시사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전쟁부) 장관 역시 같은 날 싱가포르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필요하다면 언제든 공격을 재개할 능력이 충분하며 무기 비축량도 상당하다"고 군사적 압박을 거들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기다릴 용의가 있다"며 이란의 답변을 받기까지 수일에서 일주일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이란 측은 미국과의 메시지 교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최종 합의까지는 대립이 이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29일 "미국과 메시지 교환이 계속되고 있으나 최종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번 협상은 전쟁 종식에 초점을 맞췄고 핵 문제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란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알자지라(Al Jazeera)와의 인터뷰에서 "정해진 도덕적 기준이 없고 변덕스러우며 요구 사항을 끊임없이 바꾸는 팀이 상대라면 최종 결정이라는 것은 도출될 수가 없다"며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