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꿈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20대 청년이 상사의 집요한 괴롭힘과 성희롱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친근함의 표시"이자 "장난"이었다고 주장해 유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사진=JTBC사건반장 갈무리)
지난 2024년 3월, 고(故) 방유림 씨(사망 당시 26세)는 전북 군산을 떠나 경기도의 한 반도체 부품업체에 기계가공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어머니 하수경 씨에게 “성공해서 효도하겠다”던 씩씩한 딸이었다. 하지만 입사 한 달 만에 방 씨의 일상은 지옥으로 변했다.
방 씨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에 남겨진 기록에는 40대 직장 상사 A씨의 가혹행위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A씨는 방 씨의 목을 움켜잡아 들어 올리거나, 엉덩이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코를 때리는 등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언어폭력과 성희롱도 심각했다. A씨는 방 씨에게 “여자가 왜 목젖이 있냐”, “남자로 태어났으면 나한테 죽었다”는 욕설은 물론, “네가 회식에 오면 도우미 있는 노래방을 못 간다”는 등 입에 담기 힘든 성적 비하 발언을 일삼았다.
방 씨는 참다못해 그해 10월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노동청은 A씨의 행위 중 일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했지만, 회사의 조치는 미온적이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완전한 분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퇴사조차 쉽지 않았던 방 씨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홀로 싸워야 했다.
방 씨는 결국 A씨를 고소했으나,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첫 조사를 진행했고, 그사이 방 씨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고 목격자나 CCTV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종결(불송치)했다. 피의자의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음에도 내려진 결정이었다.
묻힐 뻔한 진실은 유족의 이의신청과 검찰의 보완 수사로 드러났다. 검찰은 방 씨의 휴대전화 포렌식과 자살예방센터 상담 기록 등을 통해 강력한 증거를 확보했고, 지난해 6월 A씨를 강제추행 및 폭행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 16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A씨 측의 태도는 공분을 자아냈다. A씨 측은 사실관계는 일부 인정하면서도 “거친 환경에서 긴장을 풀어주려는 장난이었다”, “친근한 표현이라고 착각한 무지를 자책한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심지어 A씨가 ‘신망 두터운 기술자’라며 동료들의 탄원서를 제출하고 선처를 호소했다.
검찰은 징역 3년과 취업제한 5년을 구형했다.
방 씨의 어머니 하 씨는 재판 후 “A씨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다가 법정에서 보여주기식 사과를 한 뒤 재판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하 씨는 “내 딸이 끝까지 하겠다고 했던 이 싸움을 엄마인 내가 끝까지 이어가 억울함을 풀겠다”고 다짐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한 청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수사 기관의 초기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번 사건의 선고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