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미군이 이란의 핵심 경제 보급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항구를 드나드는 모든 선박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역봉쇄’ 작전에 돌입한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이 간 종전 협상이 성과 없이 결렬된 지 하루 만에 나온 고강도 압박 조치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1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 동부 시간으로 13일 오전 10시(한국 시간 13일 오후 11시)부터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에 있는 모든 이란 항구 및 연안 지역을 드나드는 해상 교통에 대해 봉쇄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령부는 이번 조치가 선박의 국적과 관계없이 공정하게 집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란 항구를 기점이나 종점으로 하지 않는 선박에 대해서는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협상 결렬 직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전쟁 자금을 벌어들이는 이란의 ‘갈취’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며 봉쇄를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은 이란이 해협을 통제하며 선박당 최대 200만 달러의 통행료를 징수하고, 하루 평균 185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해 전쟁 자금을 축적해온 구조를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란산 원유의 90%를 수입하는 중국과 주요 수입국인 인도에 대해 이란과의 거래 중단을 압박하는 다목적 카드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에 불법 통행료를 지불하는 선박도 찾아내 차단할 것”이라며 “평화로운 선박에 발포할 경우 완전히 날려버리겠다”고 경고했다. 이미 미 해군은 기뢰 제거 작업을 위해 구축함 USS 프랭크 E. 피터슨함 등을 해협에 진입시킨 상태다.
이란은 즉각 보복을 예고하며 맞불을 놓았다. 이란 의회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장은 자신의 SNS에 백악관 인근 주유소 지도를 게시하며 “현재의 휘발유 가격을 즐겨라. 곧 갤런당 4~5달러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조롱 섞인 경고를 보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역시 “미 군함의 접근은 휴전 협정 위반”이라며 “적들이 오판한다면 해협은 죽음의 소용돌이가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봉쇄의 성패가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좁은 수역으로, 이란의 지대함 미사일과 고속정 전력이 집중된 ‘킬 박스(Kill Box)’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 전력의 약 3분의 1을 투입해야 하는 장기전으로 흐를 경우 미국의 군사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국제 유가 상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 정치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브루킹스 연구소 등 싱크탱크 일각에서는 “실제 전면전을 노리기보다는 이란 경제를 고사 직전으로 몰아넣어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내려는 벼랑 끝 전술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동의 화약고인 호르무즈 해협에 다시금 전운이 짙어지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긴장감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