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미국과 이란이 합의한 ‘2주간의 휴전’이 발효 하루 만에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란이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을 이유로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전면 봉쇄하면서, 국제 물류와 에너지 시장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9일(현지시간) AP통신과 이란 국영 프레스TV 등에 따르면, 이란은 레바논 내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지속에 대응해 호르무즈 해협 폐쇄를 단행했다.
실제 해상 항적 추적 데이터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포착됐다. 해협 출구를 향해 운항 중이던 파나마 선적 유조선 ‘오로라(AURORA)호’가 오만 무산담 연안 인근에서 갑자기 뱃머리를 180도 돌려 페르시아만 내부로 회항한 것이다.
회항이 이뤄진 라라크 섬과 무산담 반도 사이 구간은 국제 해상 운송로 중 가장 민감한 요충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곳에서 유조선이 통행을 포기했다는 점을 들어 호르무즈 해협의 실효적 봉쇄가 시작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란은 이번 휴전을 계기로 해협 통제권을 아예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랍권 중재자들을 인용해 이란이 휴전 기간에도 선박 통행을 엄격히 제한하고 통행료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은 앞으로 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이 자국 정예 군사조직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사전 조율을 거치도록 강제했다. 통과 선박은 사전에 협의된 통행료를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지급해야 한다.
통행료는 선박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되며, 초대형 유조선의 경우 최대 200만 달러(약 3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미국이나 이스라엘 연계 선박은 차단하고 우호국 선박에만 낮은 비용을 적용하는 등 ‘차별적 통행 체계’를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봉쇄 보도에 대해 미국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캐럴라인 레빗 미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선박 통행량 증가가 확인되고 있다”며 이란 국영매체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통행 지표는 여전히 참담한 수준이다. S&P 글로벌 마켓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전쟁 이전 하루 평균 약 135척이 오가던 호르무즈 해협의 통과 선박 수는 이날 기준 4척에 불과했다.
당초 양국은 2주간의 휴전 기간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기로 합의했으나,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지속과 이에 따른 이란의 ‘보복 검토’ 소식이 전해지며 합의는 종잇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란 의회는 이미 통행 승인 및 수수료 부과를 포함한 새로운 해협 관리 방안을 승인한 상태다. 이란이 통행료 수익을 오만과 분담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오만 측은 아직 확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란이 지정학적 위기를 이용해 해협을 수익 모델화하고 있다”며 “휴전 합의가 첫날부터 흔들리면서 국제 유가와 해상 운송 운임의 변동성이 극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