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지난해 장기 기증을 통해 4명에게 새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난 고(故) 김창민 영화감독이 당시 식당에서 폭행을 당해 뇌사에 빠졌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유가족은 가해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수사가 지연되고 있다며 엄정한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31일 경찰과 유가족 등에 따르면, 김 감독은 지난해 10월 20일 새벽 경기 구리시의 한 24시간 운영 식당에서 다른 테이블 손님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했다. 당시 김 감독은 자폐 성향이 있는 아들이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하자 함께 식당을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故 김창민감독 sns갈무리)
사건 당시 상대방에게 주먹으로 가격당해 바닥에 쓰러진 김 감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뇌사 판정을 받았다. 유가족 측은 “사건 현장 근처에 대학병원이 있었음에도 이송이 1시간가량 지체되어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초동 대응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감독은 뇌사 판정 이후인 지난해 11월 7일, 장기 기증을 통해 4명의 환자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38세였다.
경찰은 폭행에 가담한 남성 A씨 등 2명에 대해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모두 기각했다. 결국 경찰은 지난주 이들을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했다.
김 감독의 여동생은 “가해자들이 구속되지 않은 상태라 뉴스가 나가면 도주할까 봐 그동안 알리지 못했다”며 “가해자 측은 현재까지 합의 시도는커녕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가족은 피의자가 여러 명임에도 수사가 수개월째 지연된 점 등 수사 과정 전반에 대해 부실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1985년생인 김 감독은 2013년 영화 ‘용의자’ 소품 담당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대장 김창수’, ‘마약왕’, ‘마녀’, ‘비와 당신의 이야기’ 등 다수의 작품에서 작화팀으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연출가로서의 역량도 뛰어났다. 2016년 연출한 ‘그 누구의 딸’로 경찰 인권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으며, 2019년에는 단편 ‘구의역 3번 출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고인의 영정 앞에는 미처 빛을 보지 못한 유작 ‘회신’의 시나리오가 놓여 동료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보완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유가족은 아들을 죽인 범인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