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대한민국 설상 종목의 ‘맏형’ 김상겸(37·하이원)이 네 번의 도전 끝에 올림픽 시상대에 올랐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생계고를 이겨내고 일궈낸 눈물겨운 ‘은빛 드라마’다.
김상겸은 8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 결승에서 ‘디펜딩 챔피언’ 베냐민 카를(오스트리아)을 상대로 역주를 펼친 끝에 0.19초 차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번 메달은 2018년 평창 대회 이상호(은메달) 이후 8년 만에 나온 한국 설상 종목 역대 두 번째 메달이자,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메달이다.
당초 시선은 에이스 이상호에게 쏠려 있었으나 그가 16강에서 탈락하며 아쉬움을 남긴 사이, 김상겸이 대형 사고를 쳤다. 예선 8위로 결선에 오른 김상겸은 16강과 8강에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세계 랭킹 1위들을 차례로 격파했다. 4강에서는 20살 신예 잠피로프를 실력으로 압도하며 결승에 진출, 한국 스노보드의 저력을 과시했다.
김상겸의 은메달은 한국 올림픽 역사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이 메달로 대한민국은 하계(320개)와 동계(80개) 올림픽을 통틀어 통산 400번째 메달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또한 37세 9일의 나이로 메달을 목에 걸며, 과거 사격 진종오(36세 321일)가 보유했던 한국 개인 종목 역대 최고령 올림픽 메달 기록 까지 경신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시상대에 올라 국민을 향해 큰절을 올린 김상겸의 뒤안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시절 스노보드를 시작한 그는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이 없어 생계 위협을 받을 때도 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공사판에서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하며 훈련비를 벌었고, 부모님의 걱정 어린 시선을 견디며 네 번의 올림픽을 준비했다.
김상겸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실업팀 입단 전까지 돈이 없어 막노동을 하며 꿈을 이어왔다”며 “부모님께는 늘 불효자 같았는데, 이제야 메달을 들고 찾아뵐 수 있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묵묵히 기다려준 아내에게 공을 돌리며 “아내가 오늘 메달의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감사를 전했다.
깜짝 메달로 한국 선수단에 첫 승전보를 전한 김상겸은 “상호(이상호)가 앞서 길을 잘 닦아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동료를 챙기는 맏형다운 면모를 보였다. 설날을 앞두고 전해진 김상겸의 ‘3전 4기’ 승전보는 고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