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6·3 지방선거 전라북도교육감 선거에서 투표소 결과가 잘못 입력돼 유권자 1,104명의 표가 통째로 누락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전국적인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선거 관리 부실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개표 과정의 심각한 오류까지 처음으로 확인되면서 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한 쇄신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1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전북도선관위 등에 따르면, 선거 당일인 지난 3일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1동 제3투표소의 투표 결과를 제1투표소 결과로 잘못 입력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발단은 투표관리관이 제3투표소 투표함에 붙는 투표록 내지에 ‘제1투표소’라고 오기해 개표 현장으로 보내면서 시작됐다. 개표장에서는 이미 실제 제1투표소 투표함을 개표한 상태였으나, 제1투표소로 적힌 함이 다시 들어오자 기존 개표 결과 대신 잘못 기입된 제3투표소 투표함을 개표해 제1투표소 결과로 덮어씌웠다.
이후 구 선관위는 제3투표소 결과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이미 제1투표소 결과로 덮어씌워진 데이터를 가져와 제3투표소 결과에 중복 반영했다. 이미 입력된 결과는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먼저 정상 개표됐던 제1투표소 유권자 1,104명의 투표 결과는 삭제돼 득표에 반영되지 않았고, 제3투표소의 994표가 두 곳에 중복 반영되는 파행을 빚었다. 선관위는 제1투표소 결과가 정상 반영됐다면 1, 2위 후보 간 격차가 19표 줄었을 것으로 파악했다.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었으나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흘 만에 오류 알고도…선관위원장 보고는 ‘나흘 뒤’ 늑장 처리
선관위의 안이한 사후 대응과 보고 누락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북도선관위는 선거 이틀 뒤인 지난 5일 두 개 투표소의 결과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집계 오류를 뒤늦게 인지했다.
그러나 결정권자인 전북도선관위원장에게는 나흘이나 지난 9일에야 실무진 보고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전북도선관위 관계자는 “다른 업무 처리도 있고 면밀하게 상황을 파악하느라 보고가 지연됐다”며 “내부 보고 단계와 절차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언론 보도로 의혹이 확산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았으며, 당사자인 교육감 후보자들에게도 통지하지 않아 은폐 의혹까지 자초했다.
투표용지 부족 대응 매뉴얼도 ‘부존재’…정치권, 선관위 개혁 촉구
개표 오류뿐만 아니라 본투표 당일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앙선관위 자체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 첫 회의를 열고 “투표용지 부족 당시 선관위의 대응 매뉴얼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예비용 투표용지가 시군구 선관위에 있었음에도 우왕좌왕하느라 제때 전달되지 못해 전국 26곳에서 10시간 이상 투표가 중단되는 파행이 매뉴얼 부재 탓에 일어났다는 지적이다.
또한 선관위가 본투표 투표용지 인쇄 최소 기준을 기존 60%에서 50%로 축소하는 과정에서 공식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고 사무총장 전결로 무리하게 확정 지은 정황도 드러났다.
정치권은 일제히 선관위 때리기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제도개혁 TF’ 첫 회의를 열고 중앙선관위원장 상근 체제 전환을 위한 선관위법 개정은 물론, 감사원 감찰 허용과 위원회 구성 변경을 위한 개헌까지 검토하겠다고 강력한 제도 개선을 예고했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미비가 아니라 국민 주권 침해로 인해 헌정질서 근간이 훼손된 중차대한 문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편, 유럽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시위와 관련해 “현장에 배치된 경찰관을 향한 일부 시위대의 모욕과 조롱이 도를 넘어섰다”며 자제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