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발달장애 아들이 보는 앞에서 영화감독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피의자들이 사건 발생 약 6개월 만에 구속됐다. 그간 두 차례나 영장이 기각됐으나, 검찰의 보완 수사를 통해 드러난 이들의 파렴치한 사후 행태와 증거인멸 정황이 결정적 구속 사유가 됐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오덕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4일 상해치사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모(31) 씨와 임모(31)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오전 법원에 출석한 이들은 “유족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법정으로 향했다.
뇌사 빠진 감독, 4명에게 장기기증 후 별세
사건은 지난해 10월 20일 오전 1시경 경기 구리시의 한 식당 앞에서 발생했다. 이 씨 등은 소음 문제로 시비가 붙은 고(故) 김창민 영화감독을 집단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현장에는 김 감독의 발달장애 아들이 동행 중이었으며, 아들이 보는 앞에서 폭행이 이뤄진 점에 대해 장애인복지법 위반 혐의도 함께 적용됐다.
검찰 조사 결과, 임 씨가 김 감독의 목을 조르는 ‘백초크’로 기절시킨 뒤, 의식을 되찾고 밖으로 나온 김 감독을 이 씨가 다시 넘어뜨려 반복적으로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감독은 폭행 직후 반혼수 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17일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고, 장기기증을 통해 4명에게 새 생명을 나누고 숨을 거뒀다.
“유치장서 기념사진”… 반성 없는 태도가 ‘구속’ 불렀다
당초 경찰 단계에서 신청된 영장은 주거 일정 등의 이유로 기각된 바 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 전담팀(부장 박신영)은 대대적인 보완 수사를 통해 피의자들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는 증거를 대거 확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피의자 중 한 명인 A씨는 유치장 안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해 공유하는 등 공권력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통화 녹취에서는 유족을 향해 “죽여버리겠다”는 적대감을 드러낸 사실도 확인됐다. 또한 식당 CCTV 삭제를 시도하거나 통화 내역을 지우는 등 조직적인 증거인멸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 살인 혐의 적용 가능성 시사
이날 법정에서 유족 측은 “6개월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없었다”며 눈물로 엄벌을 호소했다. 특히 검찰은 “화가 나서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피의자의 발언이 담긴 녹취를 토대로, 이들이 사망의 결과를 충분히 예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변경할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고 김창민 감독은 영화 ‘용의자’, ‘마약왕’ 제작 참여 및 ‘구의역 3번 출구’ 등을 연출한 촉망받는 예술가였다. 법원이 뒤늦게나마 신변 확보의 필요성을 인정함에 따라, 향후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