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한국 스노보드의 ‘천재 소녀’ 최가온(18·세화여고)이 부상 악재를 뚫고 한국 스키·스노보드 역사를 새로 썼다.
최가온은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기록, 전 대회 우승자인 클로이 김(미국·88점)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는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이자, 이번 대회 대한민국 선수단이 수확한 첫 번째 금메달이다. 또한 2008년 11월생인 최가온은 만 17세 3개월의 나이로 정상에 오르며, 클로이 김이 보유했던 이 종목 최연소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까지 갈아치웠다.
절뚝이면서도 포기 안 한 3차 시기…
‘90.25점’의 기적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최가온은 1차 시기 도중 보드가 파이프 끝에 걸리며 크게 넘어졌다. 다리 부상을 입은 최가온은 통증으로 오열했고, 의료진과 코칭스태프는 기권을 권유했다. 하지만 최가온은 “내 다리를 믿고 해보자”며 다시 출발대에 섰다.
2차 시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맞이한 마지막 3차 시기. 폭설이 내리는 악조건 속에서 최가온은 고난도 1080도 회전 대신 안정적인 900도와 720도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며 3.1m의 압도적인 점프 높이를 선보였다. 전광판에 최고점인 90.25점이 찍히는 순간, 최가온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경기 후 최가온은 “1차 시기 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그만해야 하나 싶어 크게 울었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다”며 “착지 후 아파도 마무리했다는 후련함이 컸는데 점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롯데 신동빈 회장의 ‘뚝심 지원’…
불모지서 꽃핀 금메달 최가온의 이번 금메달 뒤에는 롯데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롯데 스키앤스노보드팀 소속인 최가온은 2024년 허리 부상으로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았으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수술비 7,000만 원 전액을 지원하며 재기를 도왔다.
롯데는 2014년부터 대한스키협회 회장사를 맡아 약 300억 원을 투자하며 설상 종목 저변을 확대해왔다. 특히 전담 매니저 배치, 멘탈 트레이닝, 영어 학습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유망주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이번 대회에서 최가온의 금메달 외에도 김상겸(은메달), 유승은(동메달) 등 설상 종목의 메달 돌풍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스키협회는 규정에 따라 금메달을 획득한 최가온에게 3억 원의 포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제는 ‘두쫀쿠’ 먹고 싶어요”
10대 소녀의 당찬 포부 세계 최정상에 우뚝 섰지만, 경기 밖에서의 최가온은 여느 18세 소녀와 다름없었다. 평소 마라탕과 떡볶이를 즐긴다는 그는 대회 전 약속했던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를 언급하며 환하게 웃었다.
최가온은 “앞으로도 저 자신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가장 열심히 노력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