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추진한 상호관세 부과 조치가 연방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시행한 상호관세 조치에 대해 “대통령 권한을 넘어선 위헌적 행위”라고 판단하며 효력을 무효화했다.
현지시간 28일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국제무역법원은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 명명하며 선언한 상호관세 부과 정책을 영구 금지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IEEPA가 대통령에게 무제한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무역 규제 및 관세 부과 권한은 헌법상 미 의회에 명시적으로 부여된 권한으로, 대통령의 비상조치 권한으로도 침해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IEEPA를 근거로 수입품 전반에 일괄적으로 부과한 관세는 무효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국가적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며, 외국산 수입품에 광범위한 상호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지난 4월 2일 발표했다. 무역 상대국 57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 조치는 국채 금리 급등 등 시장의 불안을 초래했으며, 트럼프 측은 일주일 만에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 대해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뉴욕과 버지니아주의 중소 수입업체 5곳이 모여 결성한 ‘리버티 저스티스 센터’가 제기한 소송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IEEPA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관세를 남용했다”며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미국 내 13개 주(州)와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를 문제 삼아 7건 이상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번 판결은 그 중 첫 번째 공식 판단으로, 향후 유사 소송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백악관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지만, 트럼프 측 핵심 참모인 스티븐 밀러 전 부비서실장은 SNS를 통해 “이번 판결은 사법 쿠데타이며, 정부 권한을 선출되지 않은 판사가 가로챈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항소를 제기했으며, 향후 사건은 연방순회항소법원, 나아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단순한 행정명령 취소를 넘어, 대통령의 비상경제권한 한계를 처음으로 명확히 규정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법적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는 “공화당이 추진해온 경제 민족주의 기조에 결정적 타격”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