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초유의 사태 속에서 쿠팡 전·현직 경영진의 무책임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박대준 전 대표가 보안 강화 대신 대관(로비) 조직을 질책하며 사태 무마에 급급했던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핵심 경영진이 국회 청문회 전원 불출석을 통보하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왜 못 막았나” 발표 직전 대관팀에 고성… 보안보다 ‘입막음’ 우선?
15일 업계에 따르면, 박대준 전 쿠팡 대표는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공식 발표하기 직전인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 사옥에서 부사장급을 포함한 대관 조직 핵심 인력들을 소집해 고성을 지르며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퇴직자 계정 방치 등 기본적인 보안 관리 실패에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기술적 보안 미비점을 지적하기보다, 해킹 사태가 불러올 리스크 관리와 대응 방안을 문제 삼으며 대관 조직을 몰아세웠다.
이를 두고 내부와 업계에서는 “문제가 터지면 로비와 대관 역량을 동원해 사태를 해결해오던 쿠팡의 경영 방식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작 보안에 실패한 경영진이 그 책임을 사태 무마 실패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는 지적이다.
김범석·박대준 등 줄줄이 ‘불출석’… ‘김범석 복심’ 미국인 변호사 내세워
경영진의 책임 회피 논란은 국회 청문회로 번지고 있다. 오는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된 김범석 쿠팡 Inc 의장, 강한승 전 대표, 박대준 전 대표는 14일 일제히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김 의장은 ‘해외 거주 및 글로벌 비즈니스 일정’, 강 전 대표는 ‘책임 위치가 아님’, 박 전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를 각각 들었다. 대신 쿠팡은 지난 10일 긴급 투입된 해롤드 로저스 신임 임시 대표를 내세웠다.
로저스 대표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이자 김범석 의장의 ‘복심’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쿠팡이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보다는 ‘법적 리스크 방어’에 치중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3,37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된 국가적 재난 앞에서 경영 책임자들이 불출석을 선언한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함”이라며 불출석을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야당 의원들 역시 이들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국정조사를 추진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국감 앞두고 여당 원내대표와 ‘밀실 오찬’… 밥값만 70만 원
설상가상으로 박대준 전 대표가 지난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여당) 원내대표와 부적절한 고가 식사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CBS노컷뉴스 취재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지난 9월 5일 여의도의 한 5성급 호텔 식당 개별 룸에서 김 원내대표와 오찬을 가졌다. 이날 식사비는 3인 기준 약 70만 원(인당 23만 원)으로 쿠팡 측이 예약했다.
당시는 쿠팡이 노동 환경 문제와 창업주 국감 출석 문제 등으로 전방위적 압박을 받던 시기였다. 특히 대관 총괄 부사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사람만의 독대 시간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위반 및 부적절한 청탁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김 원내대표 측은 “100% 공개 만남이었다”고 해명했으나, 결제 주체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징벌적 조치” 경고… 사면초가 몰린 쿠팡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제도 개선을 직접 주문했다. 경찰 역시 쿠팡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로비 중심’의 위기 관리 방식이 한계를 드러내고, 최고 경영진의 책임 회피가 국민적 공분을 사는 가운데, 쿠팡이 법률가 출신 신임 대표를 앞세워 이번 파고를 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