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다원시스의 ‘ITX-마음’ 열차 납품 지연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면서 공공 발주 시장의 판도가 바뀔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강하게 질타하며 제도 개선을 지시함에 따라, 정부는 현행 최대 70%인 선급금 지급 비율을 20%대로 대폭 축소하고 계약 특약을 강화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한다.

2년 넘게 납품 지연… 그런데도 선급금 챙기고 추가 수주
16일 국토교통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다원시스는 납기 준수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한 상태다. 2022년 12월까지 납품하기로 했던 ITX-마음 150칸 중 30칸을 2년 10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납품하지 못했다. 2023년 11월 납기였던 208칸 중에서도 188칸이 미납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다원시스는 이후 3차 수주에 성공해 1,116량, 2,208억 원 규모의 추가 계약을 따냈고, 계약 금액의 60%에 달하는 선급금을 수령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발주를 받아놓고 제작은 하지 않은 채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정부 기관이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선급금을 70%씩 주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며 “선급금은 최대 20%를 넘지 않도록 하고 관련 규정을 즉각 손질하라”고 지시했다.
국토부, 기재부와 협의 착수… “선급금 축소로 납기 긴장감 높인다”
현재 ‘국가계약법’상 계약예규는 계약금액의 70% 범위 내에서 선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해당 규정을 관할하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선급금 상한을 20%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또한 현행 제도 내에서도 발주기관이 특약을 통해 선급금 지급 시기와 조건을 구체화하여 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선급금은 업체가 자금 여유를 믿고 납품 일정을 느슨하게 관리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지급 비중을 줄이면 납기 관리에 대한 긴장감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가 수주’와 ‘돌려막기’ 관행이 낳은 참사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2015년 이후 완화된 진입 장벽과 이에 따른 ‘저가 수주’ 경쟁을 지목한다. 전동차 부품사였던 다원시스는 진입 장벽 완화를 계기로 완성차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제작 역량과 납기 관리 능력 검증이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내수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저가 수주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발주처의 선급금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자금 운용이 고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받은 선급금을 해당 프로젝트가 아닌 다른 곳에 유용하는 일종의 ‘돌려막기’ 식 운영이 납기 지연을 불렀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다원시스의 계약 이행 전반에 대해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다원시스의 주가는 이 대통령의 공개 질타 직후인 15일, 전 거래일 대비 26.06% 폭락한 2,795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장이 회사의 사업 지속성에 의구심을 품은 결과로 해석된다.
법원은 다원시스 손 들어줘… “입찰 제한은 부당”
한편, 행정적 제재 움직임과는 별개로 법원은 다원시스의 손을 들어주며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전고법 제2행정부(부장 김병식)는 지난 9일 다원시스가 코레일을 상대로 낸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 취소 소송 2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앞서 코레일은 2022년 담합 의혹을 이유로 다원시스에 6개월 입찰 제한 처분을 내렸으나, 2심 재판부는 조달청의 제재와 겹치는 ‘이중 제재’ 소지가 있고, 3사 과점 체제인 국내 시장에서 특정 업체를 배제할 경우 독과점이 강화될 우려가 있다며 처분이 과하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다원시스는 납품 지연과 대통령의 질타 속에서도 법적으로는 입찰 자격을 유지할 명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최진석 철도경제연구소장은 “철도차량은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가격 경쟁을 넘어 제작 역량과 납기 관리 능력을 철저히 평가하는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칼을 빼 든 선급금 제도 개선과 수사 의뢰, 그리고 법원의 판결 사이에서 향후 철도 차량 발주 시장이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