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성산일출봉 인근서 20kg 발견… 66만 명 동시 투약 가능량, ‘차(茶)’ 표식 포장
제주도 해안가에서 60억 원 규모의 마약류 케타민이 발견됐다. 관광객이 몰리는 성산일출봉 인근 해변에서 ‘66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 버젓이 쓰레기 자루 속에 섞여 있었다.
해경은 국제 밀반입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국내 바다가 마약 유입 통로가 된 것이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제주해양경찰청제공)
쓰레기 더미 속 ‘은박 포장 벽돌’… 한자로 ‘차(茶)’
제주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추석 연휴였던 지난 7일 오전, 서귀포시 성산읍 광치기해변을 청소하던 바다 환경지킴이가 쓰레기 자루 속에서 수상한 덩어리들을 발견했다.
물체는 가로 25cm, 세로 15cm 크기의 벽돌형 포장체 20개로, 은박지와 투명 비닐로 밀봉되어 있었다. 겉면에는 중국식 한자 ‘茶(차)’가 인쇄돼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분석 결과, 해당 물체는 마약류 케타민 20kg으로 확인됐다.
1회 투약량 0.03g 기준으로 약 66만 명이 동시에 투약 가능한 양, 시가로 약 60억 원대에 달한다.
해경 “해상 밀반입 가능성… 국제공조 수사 착수”
제주해경은 즉각 수사전담반을 꾸리고 주변 해안과 해상 경로를 조사 중이다.
또 포장지에서 검출된 증거물의 DNA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고, 미국 마약단속국(DEA) 등과의 국제 공조수사에 착수했다.
해경 관계자는 “국내에서 제조되거나 투기된 정황은 아직 없다”며 “해상 유입이나 국제 마약 조직의 운반 경로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클럽 마약’ 케타민, 이제는 해안가까지
케타민은 본래 수의학용 또는 응급 마취제로 사용되던 약물이다.
하지만 환각과 기억상실을 유발하는 특성 때문에 ‘클럽 마약’,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며 불법 유통이 확산되고 있다.
해리성 마취제 특성상, 다량 복용 시 현실 인식이 왜곡되고 중독성이 심해 정신적·신체적 의존 위험이 높다.
최근 국내에서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케타민, MDMA, 필로폰 등이 재유입되는 추세다.
마약류 단속 강화에도 불구하고 해상 경로를 통한 밀반입, 온라인 유통, 해외 직구형 밀수가 새로운 수법으로 등장하고 있다.
반복되는 해상 밀수, 허술한 해양 감시망
이번 사건은 지난해 인천·부산항을 통한 필로폰 대량 밀반입 사건에 이어 또 한 번 해상 경로의 허점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일대에서 출발한 해상 밀수 조직이 제주 해역을 거쳐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나라의 해양 감시 체계가 여전히 ‘내륙 중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마약 수사 전문가 A씨는 “포장에 ‘차(茶)’ 한자를 쓴 점을 보면 중국 남부나 동남아 조직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해변에서 이 정도 규모가 발견된 것은 단순 유기물이 아니라 조직적 운반 과정 중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사진=제주해양경찰청제공)
‘바다 쓰레기’가 된 마약, 시스템은 작동했는가
문제는 이런 대량 마약이 ‘우연히 발견됐다’는 점이다.
청소 중이던 민간인 환경지킴이가 신고하지 않았다면, 이 위험 물질은 그대로 바다로 흘러갔을 수도 있었다.
국가가 수십조 원을 들여 감시체계를 운영하지만, 실제 발견은 ‘시민의 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마약과의 전쟁” 구호보다 실질적 감시·예방 체계 필요
이번 사건은 더 이상 ‘도시 뒷골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약은 이제 관광지의 해변에서도 발견된다.
수사기관의 일회성 단속이 아니라, 항만·연안 감시 강화, 국제공조 체계 상시화, 해양 쓰레기 감식 시스템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