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한 피싱 사기 조직들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감금·고문 사건이 잇따르며 국제 사회의 충격을 사고 있다. 그러나 한국 경찰의 국제공조 요청은 절반 이상이 회신조차 받지 못하는 등 협력 체계가 사실상 마비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기 시설 건물 및 감시초소로 의심되는 곳들(노란색 동그라미로 강조 표시)
(사진=사진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피싱 범죄 관련 국가별 국제공조 사건 현황’에 따르면, 경찰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총 188건의 피싱 범죄와 관련해 인터폴을 통해 국제공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 중 99건(52%)은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고, 회신이 이뤄진 건 46건에 불과했다. 진행 중인 사건은 23건, 자료 제공을 거부당한 건은 24건이었다.
특히 캄보디아의 경우 20건 중 6건만 회신을 받았다. 중국(홍콩)은 43건 중 3건, 베트남은 22건 중 8건에 그쳤다. 반면 일본은 40건 중 39건을 회신하는 등 비교적 원활한 협조를 보였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캄보디아가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협조가 원활하지 않다”며 “국제기구나 정부 차원에서 비협조적인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 내 온라인 사기 및 감금 실태를 폭로했다.
242쪽 분량의 보고서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다’에는 58명의 피해자 인터뷰가 담겼으며, 최소 53곳의 감금 시설에서 고문과 강제노동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보이스피싱·로맨스 스캠 등 온라인 사기에 동원됐으며, 탈출 시도자는 ‘다크 룸’이라 불리는 고문실로 끌려가 전기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특히 감금시설 20곳에는 캄보디아 경찰이나 군의 개입 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앰네스티는 “정부 단속 후에도 감금과 고문이 계속됐다”며 “캄보디아 정부가 구조적으로 인권침해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문제에 직면한 인도와 말레이시아는 적극적인 구출 작전을 전개했다.
말레이시아는 2022년 현지 경찰과 합동으로 100여 명의 자국민을 구조했고, 인도는 올해에만 770명을 구출, 최근 3년간 1,000명가량을 송환했다.
반면 한국은 대학생 피살 사건 이후에서야 현지 대응을 강화했다.
경찰은 ‘코리안 데스크’ 설치를 추진 중이지만, 아직 직접적인 구출 작전 체계는 마련되지 않았다.
외교 소식통은 “현재 대응은 범죄 발생 후 수습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사전 탐지·구출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캄보디아 체류 중인 한국인과 연락이 끊겼다는 실종·피해 신고가 전국에서 잇따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가족이 캄보디아에 갔는데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가 4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경북에서는 7건의 실종 의심 신고가 접수됐고, 이 중 한 사건은 “2천만 원을 보내면 풀려날 수 있다”는 인질 협박 형태였다.
제주와 전북, 광주 등에서도 유사한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광주의 한 20대 남성은 지난 8월 마지막으로 “살려달라”는 말을 남긴 뒤 연락이 두절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캄보디아 내 한국인 피해자 전수조사를 검토 중”이라며 “외교부·현지 당국과 협력해 안전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