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별세로 잠시 숨을 고르던 더불어민주당 내 '합당 갈등'이 조문 정국 종료와 동시에 거대한 폭풍우로 돌변했다.
정청래 대표가 추진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를 두고 지도부 간 공개 설전은 물론, 차기 당권 주자들과 초선 의원들까지 가세하며 당이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최고위서 터진 "2개의 태양은 없다"… 지도부 정면충돌
지난 2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합당 문제를 둘러싼 '성토의 장'이었다. 비당권파 최고위원들은 정청래 대표의 면전에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조기 합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을 정청래·조국의 민주당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라며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합당 추진의 배경에 차기 대권과 당권을 향한 개인적 욕망이 깔려 있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황명선,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당력 집중과 절차적 정당성을 이유로 합당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정 대표 측인 문정복 최고위원은 과거 이재명 대표(현 대통령) 시절의 '비명계' 사례를 언급하며 "공개 석상에서 대표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다"라고 맞받아치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90%가 반대"… 초선·혁신회의 등 당내 여론 '싸늘'
당 지도부 밖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더민초'는 비공개회의 결과, 참석 의원 40여 명 중 절대다수가 합당 논의 중단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강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로 재논의하거나 논의 자체를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원외 친명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또한 성명을 통해 정치공학적 합당에 대해 신중론을 펼쳤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통합 의중과는 별개로, 당내 실무진과 출마 예정자들이 '조국혁신당 합수'가 가져올 공천 및 당권 지형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민석 총리 '참전'으로 현실화된 '정-김' 당권 경쟁
특히 주목할 점은 김민석 국무총리의 행보다. 김 총리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절차 없는 통합은 도움이 안 된다"며 정 대표의 행보에 우회적인 우려를 표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8월 전당대회를 앞둔 차기 당권 주자 간의 기 싸움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 대표가 '1인 1표제' 등 당원 중심의 개혁을 통해 연임 기반을 닦으려 한다면, 김 총리는 '원칙과 절차'를 강조하며 당내 안정적 지지 기반을 결집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유시민·김어준 등 외곽 스피커 가세… '새 판 짜기' 의혹도
이런 와중에 유시민 작가와 방송인 김어준 씨 등 여권의 강력한 외곽 스피커들이 "합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갈등의 층위는 더욱 복잡해졌다.
비주류 측에서는 이들이 합당이라는 '새 판'을 통해 과거 친노·친문 주류 세력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독자 세력화를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한 재선 의원은 "지방선거 압승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결국 차기 공천권과 당권을 둘러싼 후계 구도 다툼의 성격이 짙다"고 진단했다.
결국 정청래 대표가 "당원에게 길을 묻겠다"며 정면 돌파 의지를 굽히지 않는 가운데, 설 연휴 전후가 이번 '합당 내홍'의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