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한국 남자농구가 적지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을 꺾고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 자리를 탈환했다. 에이스 이현중(포틀랜드)의 눈부신 활약과 함께 '12년 주기설(2002년, 2014년, 2026년)'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통산 다섯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니콜라이스 마줄스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농구대표팀은 20일 일본 나고야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결승전에서 개최국 일본을 67-57로 물리쳤다. 지난 13일 조별리그 맞대결(100-83 승)에 이어 결승에서도 일본을 완파하며 대회 2연승으로 완벽한 우승을 일궈냈다.
우승의 일등 공신은 단연 '에이스' 이현중이었다. 이현중은 승부처였던 3쿼터 외곽포 3방을 포함해 3점슛 5개, 27점 18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을 지배했다. 첫 종합 국제대회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고비마다 해결사 역할을 완벽히 해냈다.
한국은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3쿼터에 승기를 잡았다. 33-32로 1점 차 리드를 지키던 3쿼터 중반, 이현중이 연속 3점슛을 꽂아 넣으며 흐름을 가져왔다. 이어 이정현(14점·소노), 변준형(정관장), 이우석(상무)의 3점포까지 림을 가르며 한국은 3쿼터에만 6개의 외곽포를 몰아쳐 53-47로 격차를 벌렸다.
4쿼터에는 노련한 수비와 허슬플레이가 빛났다. 12년 전 인천 대회 탈락의 아픔을 겪었던 장재석(KCC)을 비롯해 이승현(현대모비스), 최준용 등 베테랑들이 일본의 211㎝ 장신 귀화 선수 알렉스 커크를 철저히 묶었다. 한국이 4쿼터 초반 4분 동안 일본을 2득점으로 틀어막는 사이, 이현중이 집념의 팁인 득점 등을 더해 64-53까지 점수 차를 벌리며 쐐기를 박았다.
이번 우승으로 이현중은 한국 농구사에 남을 진기록도 썼다. 1990 베이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이자 1984 LA 올림픽 은메달 주역인 어머니 성정아 대한민국농구협회 이사의 뒤를 이어 ‘모자(母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등극했다. 고교 명지도자인 아버지 이윤환 전 감독까지 더해진 명실상부한 '농구 로열패밀리'의 쾌거다.
경기가 끝난 뒤 이현중은 환호 대신 일본 선수단과 코치진을 찾아가 먼저 손을 내밀며 품격 있는 스포츠맨십을 보여줬고, 이후 동료들과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국 농구는 직전 항저우 대회 7위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과 귀화 선수 라건아와의 결별이라는 악재를 딛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결승전 당일 오전 이동 차량이 배차되지 않아 훈련조차 하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젊은 주축 선수 7명이 병역 혜택까지 얻게 되면서, '마줄스호'를 중심으로 한 한국 농구 황금세대의 장기적인 독주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