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찬 기자
법원이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사법부가 반도체 공정의 특수성을 인정해 파업 중이라도 생산라인의 핵심 보안 작업과 안전 시설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하라고 명령함에 따라, 향후 노조가 예고한 총파업 행보에 상당한 제약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합동취재반)
수원지법 민사31부(재판장 신우정)는 18일 삼성전자가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등 2개 노조를 상대로 낸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이같이 결정했다.
재판부는 노조의 파업 권리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회사 내 방재·배기·배수 시설 등 안전보호시설과 설비·제조·공정 및 인공지능(AI)센터 시스템 관리 등 보안 작업에 대해서는 쟁의행위 중이라도 평상시(평일 및 주말·휴일)와 동일한 정도의 인력, 가동시간, 가동규모, 주의의무를 투입해 유지·운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해당 업무들이 궁극적으로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성격이 있더라도, 중단될 경우 노동조합법 제38조 제2항이 예방하고자 하는 원료·제품의 변질 및 부패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면 보안 작업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노조 측이 요구한 '신규 웨이퍼 투입 중단' 등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조업 계속의 자유를 전면 침해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이번 결정의 주요 근거로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꼽았다. 재판부는 "24시간 가동되는 연속순환 공정의 특성과 웨이퍼의 고유한 특성상, 정해진 대기 한계시간을 초과하면 산패나 화학물질 증착 등으로 원료가 변질될 위험이 매우 크다"며, "일시적인 가동 중단조차 수율 저하와 막대한 설비 재가동 비용 등 회복하기 어려운 직접적 손실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생산 차질은 자동차·가전·정보통신 등 전방 산업의 지연으로 이어져 국내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며 "이러한 손해는 사후 금전 배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저하고 급박한 위험"이라고 강조했다.
법원은 노조가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거나, 잠금장치를 설치하고 근로자의 출입을 방해하는 행위 역시 엄격히 금지했다. 만약 노조가 이번 법원의 명령을 위반해 안전보호시설 및 보안 작업의 평시 운영을 방해하거나 관련 지침을 배포할 경우, 위반행위 1일당 각 노조는 사측에 1억 원씩 지급해야 한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장과 우하경 위원장 대행 등 노조 간부들에게도 위반 1일당 각 1000만 원씩의 강제이행금이 부과된다.
다만, 법원은 사측의 신청 내용 중 노조가 조합원에게 파업 참여를 설득하는 과정에서의 협박 금지나 일부 시설에 대한 점거 금지 신청 등은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낮거나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법조계와 산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노조가 기획한 총파업의 동력이 사실상 크게 약화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파업을 진행하더라도 핵심 생산라인 인력을 그대로 유지해야 해 사측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두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내달 7일까지 18일간 약 5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노조는 '연봉 50%'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재원 명문화를 요구하고 있으나, 사측은 최고 수준의 보상을 약속하면서도 성과급 제도 자체를 수정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삼성전자 노사는 가처분 결과가 나온 18일 오전부터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정부 중재로 총파업 전 마지막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법부의 가처분 인용 결정이 막판 노사 협상 테이블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